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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스튜디오 지브리, 사하라에 부는 열풍
지브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회사 톱 크래프트가 있습니다. 1985년 6월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스즈키 토시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 제작을 목적으로 도쿠마 쇼텐의 투자를 받아 톱 크래프트를 인수하였습니다. 즉시 회사 이름을 지브리로 변경하고 조직을 재편하여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지브라의 사명은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을 의미하는 리비아어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용 정찰기에 붙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유년 시절 큰 아버지가 비행기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영향이 작용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비행기 광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붙인 이름입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선풍을 일으키자는 의미로 지었으며 이윽고 그 포부와 바람으로 하여금 지브리는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변화시켰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스튜디오로 입지를 다지게 되면서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으며 대표작으로는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리고 코쿠리코 언덕에서 등이 있습니다. 상업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만 섬세하고 뛰어난 영감으로 다양한 모티브를 이끌어내는 지브리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으로는 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 비행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정 어린 모티브가 작품 곳곳에 드러나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장기 중 하나는 비행을 갈구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평면 공간에서 가장 잘 그려낸다는 것이며 특유의 색채 감각과 공간 구성력은 이러한 장면들에서 가장 빛을 발합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바람을 가르며 새들과 함께 비행하는가 하면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의 바다에서 항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유년의 동심과 연결되어 보는 관객들을 주인공의 비행에 동참시킵니다. 그다음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여성을 이야기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게 한다는 점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대부분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이야기를 그려나가며 아픈 엄마를 둬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 마법 수행을 위해 스스로 자립하는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 어릴 때 버려져 들개의 품에서 자란 모노노케 히메의 산, 부모님이 마법에 걸려 돼지가 되고 혼자 위기를 극복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가 물려주신 모자 가게에서 일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까지 지브리는 주인공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부모 역할에 배치하여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주의인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독립된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 이러한 설정을 두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화에는 많은 여성들의 단서가 있습니다. 용감하고 자부심 강한 소녀들이 두려운 마음을 다해 싸우는 것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나 지지자가 필요하겠지만 구세주는 절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도 어떤 남자처럼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회상은 지브리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작품 속 회상 장면은 이야기 전개의 핵심부로 들어가게 해주는 매개가 됩니다. 현실 속에서 풀어 갈 수 없는 부분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과거 회상이라는 요소를 사용해 극의 전개를 급진전시킵니다. 또 회상 장면의 출현은 작품의 시간적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미래에서 본 과거로의 시점이라는 미래 과거형적 성격을 띠며 관객을 빛바래고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2.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이유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대학 시절 만화에 뜻을 두고 연재를 시작하면서 도에이 동화의 공채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게 됩니다. 여담으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입사 이유를 미 제국주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후 회사를 옮겨 1978년 TV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을 통해 연출자로 데뷔하였고 다음 해 극장용 애니메이션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을 바로 제작하게 됩니다. 당시 이 영화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되었으며 흥행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결실을 맺고 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에서 황금의 손을 가진 군주로 등극하며 1984년 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마주에 연재했던 자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로 환경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인간의 에고이즘에 관한 통찰 등으로 사회적 반향과 더불어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해에 타카하타 이사오, 스즈키 토시오와 함께 지브리를 설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금까지 총 세 번 은퇴 선언을 하고 번복했는데 1차 은퇴 선언은 1997년, 그의 나이 57세 때. 당시 모노노케 히메가 일본 내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그의 입장에서도 이루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이루었던 시점이었습니다. 1990년 말의 세기말적 분위기 또한 그의 은퇴에 대한 적절한 시기였고 그를 대변할 수 있는 든든한 후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계 세대교체에 별 탈이 없을 무렵이었습니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도쿠마 쇼텐의 사장 도쿠마 야스요시가 세상을 떠나면서 도쿠마 쇼텐이 몰락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브리는 도쿠마 쇼텐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선언하게 되며 이후 이웃의 야마다 군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발표하지만 지브리 사상 최악의 흥행 실패를 맞이하며 어쩔 수 없이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은퇴 번복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2차 은퇴 선언은 그의 나이 64세 때인 2004년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역대 최고 흥행 수입인 304억 엔을 달성하며 지브리를 기사회생시킨 미야자키 하야오는 베를린영화제, 아카데미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게 됩니다. 이 시점 또한 정상에서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었던 최적의 은퇴 시점으로 지브리 내부에서도 본격적인 세대교체 작업에 들어가 모리타 히로유키와 호소다 마모루에게 애니메이션을 맡기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모리타 히로유키의 고양이의 보은은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지브리의 성에는 차지 않았습니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또 한 번의 대박 신화를 기록하게 되었으나 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본인은 창작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여 연령상의 이유로 은퇴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전하며 친아들 미야자키 고로에게 감독을 맡기고 은퇴를 합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고로가 맡은 영화가 참패를 하면서 다시 한번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2013년 그의 나이 73세 때, 3차 은퇴 선언을 한다. 지브리에서 내보낸 호소다 마모루는 승승장구하는 반면 그 대안으로 앉힌 미야자키 고로가 부진한 흥행 성적과 낙하산 논쟁으로 구설수에 오릅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까지 제작 현장에 돌아온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은퇴 선언을 합니다.
3. 베스트 애니메이션 영화 선정
첫 번째, 지브리가 선보인 첫 작품으로 천공의 성 라뷰타입니다. 영화는 광부 소년 파즈가 군대와 해적단 사이에서 표적이 된 시타를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파즈는 쫓김을 당하고 있던 시타에게 고아라는 동질감을 느껴 친구가 되어주고 시타와 관련된 모험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희생마저 감수합니다. 그러나 해적단이 조력자로 탈바꿈되면서 이야기는 하늘에 떠다니는 미지의 섬, 라퓨타를 찾는 데에 맞춰집니다. 그때 라퓨타를 차지하려는 또 다른 적대자가 등장해 시타와 파즈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위기를 겪지만 결국 시타는 비행석 목걸이의 힘을 빌려 라퓨타를 파멸시키고 사건을 정리하고 맙니다. 땅으로 돌아온 시타와 파즈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숲에 누워 동심과 평화를 되찾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직설적인 표현과 군더더기 없이 떨어지는 줄거리, 그 안에서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놓지 않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영화적 공식이 등장합니다. 80년대 영화인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연출과 그림체, 스토리 텔링이 고퀄리티여서 인상적입니다. 두 번째, 비밀스러운 터널을 지나면서부터 치히로 가족의 시간은 멈추게 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 버리고 치히로는 어느새 센이란 새 이름으로 선계에서의 삶을 적응해 나답니다. 새로운 세상에 들어와 새로운 자격이 생겨나면 본래의 나를 잊기 마련인데 치히로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회귀하려는 성장 서사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친한 친구의 10살짜리 딸을 보면서 10살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인공 센이 겪어내는 모든 사건들을 그 나이대 아이가 충분히 감당하고 느낄만한 난이도로 설정해 시선을 낮춘 대신 이해와 공감의 폭을 확장시켰습니다. 쓰레기 더미로 인해 오물 냄새를 풍기는 강의 신, 무분별한 인간들의 개발로 사라져 버린 자연의 모습 등 장면 사이사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던지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그저 판타지물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현실과 어느 정도 이어지는 개연성이 존재해 해석하기 나름이란 불분명한 리뷰와는 다소 거리가 먼 작품입니다. 세 번째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입니다. 열여덟 살 소녀 소피는 하울을 만난 뒤 영문도 모른 채 마녀의 저주에 걸려 별안간 90세의 노인으로 변모합니다. 마법을 풀어준다던 하울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발길을 옮긴 소피는 급기야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들어가 그곳의 청소부를 자처하며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게 됩니다. 어떠한 것에 깊이 골몰해 버리면 사람은 점차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뭘 먹고 싶은지 등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잃어버리고 마는데 이 순간을 기점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본격적인 이야기에 접어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다시 젊어졌다가도 늙어지는 소피의 모습은 마음가짐에 따라 어린아이가 되기도 90살 먹은 노인이 되기도 하는 인간의 속성을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체에 적용해 섬세한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다가도 점차 개연성이 떨어지는 흐름으로 초반 기대감에 비해 약간의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무수히 많아 다시 곱씹어 볼수록 다양한 의미를 찾게 되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