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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브람스 브랜드와 디터람스의 만남

    1900년대 중반 독일 디자인의 대명사였던 브라운은 그 시작은 1921년 엔지니어 막스 브라운(Max Braun)이 프랑크푸르트에 설립한 작은 기계 부품 회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람을 위한 디자인과 단순성을 강조했던 예술 학교 바우하우스의 원리를 뿌리로 삼고 대량생산과 예술성을 결합한 브라운을 탄생시켰습니다. 1923년 라디오 안테나를 생산하기 시작하며 사세가 커졌고,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축음기를 발표하는 등 지속적으로 파격적인 신제품을 소개하며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1천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종합 가전기기 기업이 된 것은 설립자의 사망 후 1951년 두 아들 에르빈과 아르투르가 회사 경영권을 이어받으면서부터입니다. 브라운 전성기의 중심이 되는 디터 람스가 1955년에 입사한 후 그를 비롯한 디자인 팀은 오디오 시스템부터 커피 머신, 다리미, 라이터, 계산기, TV 등 가전제품 전 분야에 걸쳐 각종 소비재를 만들어내며 브라운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고 현대적 이미지의 기준을 다지게 됩니다. 1967년 질레트에 인수되고 해외 시장을 점차적으로 정복하다 2005년 미국의 다국적 기업, 프록터 앤드 갬블로 넘어간 이후 현재는 면도기를 중심으로 제모기, 핸드 블렌더, 전동 칫솔, 적외선 귀 체온계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디터 람스는 1998년 은퇴했지만 그의 디자인 철칙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브라운의 모토로 남아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다가 필요할 때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절제와 간단함 그리고 합리성을 강조하며 20세기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인물이 된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군더더기 없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것만 남겼다는 그의 디자인에 주목하다 보면 유행을 따라가기 바쁜 요즘 시대 디자인이 기본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게 합니다.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시작해 브라운(BRAUN)의 주축이 되는 제품 디자이너에서부터 수 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의 디자인이 꾸준히 회자되는 걸 보면 일시적인 과거에 대한 향수는 아니며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더 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미스터 브라운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브라운(BRAUN)을 빼놓고 그를 논할 수 없습니다. 브라운과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1955년으로 브라운 형제는 바우하우스정신을 계승한 울름조형대학과의 협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한창 떠오르기 시작하던 미드 센추리(Mid Century)의 모던한 무드와 어울릴만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구상하였으며 디터 람스는 이 점에 반해 당시 잘 알려진 회사가 아니었음에도 즉시 입사를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브라운에 합류했지만 이듬해 본격적으로 제품 디자인을 시작하며 1961년부터 35년간 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8년 당시 디자이너로서는 파격적으로 브라운 임원 자리에 올라 기업 경영 일선에도 참여하며 여기에는 팀의 합동을 강조하며 팀원의 성취를 존중했던 그의 리더십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디터 람스는 디자인 철학의 기본이 되는 10가지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원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좋은 디자인의 조건은 기술이나 문화와 마찬가지로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단순성, 정직성, 자제력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디자인 이론과 실천에 빈번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2. 20세기 디자인사의 사명 10가지

    그의 비단 제품 업적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 불릴 만큼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디자인과 디테일의 유사점은 디터 람스의 디자인적 사고에 대한 찬사의 결과였을까 그의 철학은 여전히 많은 디자이너들의 초석이 되고 있으며 그렇기에 다수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디터 람스의 철학을 반증하는 듯합니다. 디터람스 디자인 10가지 철학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디자인은 항상 혁신적인 기술과 병행됩니다. 기술이 동일한 수준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디자인이 좋을 수 있겠는가? 둘째,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좋은 디자인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모든 요소들을 무시하고 유용성을 극대화합니다. 셋째, 좋은 디자인은 미적인 것입니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개인 환경과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잘 만들어진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제품의 구조를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더불어 이것은 제품을 말하게 할 수 있게 하고, 디자인 그 자체로 설명되도록 합니다. 다섯째, 좋은 디자인은 과시하며 드러내지 않습니다. 목적이 명확한 제품에는 도구의 특성이 드러난다. 제품의 디자인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사용자가 알아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섯째, 좋은 디자인은 정직합니다. 정직이란, 제품을 실제보다 더 혁신적이고 강력하며 더 가치 있게 보이도록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곱 번째,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됩니다. 유행에 민감한 디자인과 달리 버려지는 것이 흔한 현대사회에서도 오래 지속됩니다. 여덟 번째,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합니다. 임의적이거나 우연이 아니어야 하며 철저함과 신중함은 곧 사용자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좋은 디자인은 환경친화적입니다. 디자인은 환경보호에 중요한 기여를 합니다. 자원을 보존하고,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오염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열 번째,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입니다. 단순함으로 순수함으로 돌아가라. 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 열 가지 사명을 남겨줬습니다. 브라운에서 디자인한 오디오 디자인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됩니다. 간결하고 깔끔한 외형을 갖춘 라디오 겸 턴테이블로, 육중했던 기존의 디자인을 탈피해 콤팩트한 올인원 시스템으로 제작되었으며 아울러 전면에 있던 컨트롤 버튼을 모두 상단으로 옮기고 투명한 아크릴 소재로 덮개를 만들었습니다. 제품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경쟁사에서는 아크릴 소재를 비꼬며 백설 공주의 관이라 불렸으나 하지만 편리성 덕에 결국 빛을 보았으며 전 세계 음향기기 디자인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품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언제나 환경 속에서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유니버설 쉘빙시스템은 원하는 형태로 조립하는 모듈가구로 거실의 수납함 혹은 옷방행거, 서재 책꽂이 등  각자 삶의 방식에 따라 무한히 변신을 거듭합니다. 이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그의 디자인에는 사용자를 고려하는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3. 다큐멘터리 소개

    그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디터 람스는 그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감독 게리 허스트윗(Gary Hustwit)이 그의 집에서 3년을 함께 보내며 디터 람스의 일과 인생, 디자인과 그 과정을 담아냈습니다. 1시간 남짓의 다소 짧은 러닝 타임이지만 그의 목소리로 담담히 읊조리는 작품은 깊이 있고 품위 있는 철학은 물론 삶의 가치관과 태도까지 깨우쳐줍니다. 영화 속 등장한 그의 집 역시 탄복할 만한 요소 중 하나인데 그는 아내와 단둘이 한 곳에서 50 년 이상 거주하였습니다. 딘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아 싫증이 날 만도 하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머무르는 모든 공간이 조화롭기 때문입니다. 간결하고 소박한 구조 나무와 수영장이 구비된 정원 등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필요 이상으로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 그리고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그의 소신 역시 반영된 것일 터입니다. 수영장에 햇빛을 가리는 나무를 다듬는 일도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의 일이 곧 삶이고, 인생이 곧 일이었는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상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단언하건대 영화는 그의 이름이 왜 그만한 가치를 지니는지 제대로 일깨워줍니다. 영화가 막바지에 들어설 때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 게 걱정됩니다. 그저 핸드폰만 쳐다보며 길을 걸어 다니죠. (중략) 'Less, but better'는 단순한 디자인 콘셉트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적은 것이 어디서든 좋을 거예요."라고 전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