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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자크뮈스, 열아홉에 론칭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한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는 프랑스 패션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그는 영민한 전력가로 평가받으며 어느새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했습니다. 자크뮈스는 여타 브랜드에서 느낄 수 없는 낭만이 깃들어있습니다. 예상을 넘는 의외성은 이질감 없이 늘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것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굳게 자리 잡으며 매 시즌을 기다리게 하는 마력을 뿜어냈습니다. 어린아이의 맑은 눈빛 찬란하고 싱그러운 청춘, 삶의 지혜를 입은 노년의 주름진 초상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을 그려내는 브랜드로 자크뮈스를 떠올리면 선명하고 명랑한 총천연색의 장면들로 품은 사랑이 떠오릅니다. 어느덧 론칭 13년 차 이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크뮈스는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가 나고 자란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정제되지 않은 무드를 고스란히 투영했습니다. 자크뮈스는 명성 높은 패션스쿨의 정석코스를 밟고 디자이너가 된 부류는 아닙니다. 100명 남짓 거주하는 프로방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당근과 시금치를 재배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자크뮈스는 어릴 적 우연히 본 장 폴 고티에의 비디오로 하여금 패션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내 자신의 미래를 확신한 그는 18세 나이로 파리에 넘어가 패션스쿨 에스모드에 입학하고 그의 가족 중 처음으로 마을을 떠난 소년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이 비극은 유한한 시간에 대한 자크뮈스의 집착으로 발현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해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패션 매거진에서 아트 디렉터 어시스턴트로 일하다 이듬해 곧장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다. 그렇게 모친의 처녀 시절 성 자크뮈스는 브랜드가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자크뮈스 삶의 비극적인 터닝 포인트는 또 다른 출발선으로 그를 데려갔습니다. 예상치 못한 인생 최대의 절망을 자기 의지와 확신으로 감싸 안고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정립한 어린 청년이 꿈을 향해 맨몸으로 뛰어들었습니다.

    2. 패션계의 음유시인

    자크뮈스의 미니멀리즘은 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브랜드 초기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했던 그는 원하는 옷감을 찾은 후 무작정 커튼 가게에 들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옷감을 가져와서 원하는 걸 만들면 얼마죠? 돌아온 대답은 치마는 100유로면 할 수 있어 단추와 주머니를 더하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기에 자크뮈스는 단추 없이 사이드에 지퍼가 있는 하이웨이스트 스커트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의도하진 않았으나 미니멀리즘 패션이라는 타이틀을 그의 첫 작업물에 붙이게 됩니다. 전문적인 패션 디자인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패션 비즈니스에 대한 규칙에 대한 이해도 전무했던 그에게 실전을 위한 학교가 되어준 곳은 꼼데가르송의 파리 부티크였다. 자크뮈스의 세 번째 컬렉션을 우연히 본 꼼데가르송의 창업자 레이 카와쿠보는 어린 청년의 남다른 크리에이티브에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의 남편이자 도버 스트릿 마켓의 공동 창업자인 아드리안 조페까지 만나게 된 자크뮈스는 꼼데가르송 파리 부티크의 세일즈맨으로 일하게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청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의 취향, 패션 브랜드의 운영 방법, 패션 디자인의 미학적인 관점 등을 총체적으로 학습하며 개인 프로젝트로서의 패션 디자인 또한 멈추지 않습니다. 론칭 3년 차인 2012년, 22세의 자크뮈스는 파리패션위크에 데뷔한 최연소 디자이너가 되며 미성숙한 아마추어가 만든 겉멋 든 패션 브랜드, 빅 하우스 브랜드를 모방하기에 바쁜 어설픈 디자인 등 여기저기서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으나 그 모든 이야기를 꾹꾹 누르고 튀어 오른 자크뮈스의 매력은 패션 디자인 그 이상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매혹적으로 풀어낸 스토리텔링의 힘이었습니다. 영화와 소설, 시 한 편을 구상하듯 특정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가 좋아하는 옷과 음식 등을 상상하면서 구체적인 테마를 설정하는 것. 컬렉션을 구상하는 자크뮈스만의 방식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의 감정이 서려있었습니다. 자크뮈스의 영원한 뮤즈는 그 누구도 아닌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어머니인 셈입니다.

    3. 인스타그램로 어필하다

    인스타그램을 꽤나 하는 사람이라면 자크뮈스의 인스타그램을 빼놓지 않고 봤을 것입니다. 소셜미디어와 함께 태어난 세대인 자크뮈스가 론칭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SNS 업데이트였으며 특히 자크뮈스의 인스타그램은 같은 사진을 연달아 3장씩 올리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직접 밝힌 이유는 꽤나 단순하며 한 줄에 같은 사진이 있는 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나요? 아름다움을 대하는 자크뮈스의 접근 방식은 단연코 순수하면서 동시에 영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자크뮈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하루아침에 180만 명이 늘어나는 타이밍이 오게 되는데 때는 20 봄, 여름 컬렉션 런웨이 공개 직후로 프로방스의 그림 같은 하늘 아래 흐트러진 라벤더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놓인 푸시아 핑크 카펫에서 캣워크를 이어가는 모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화제를 모으기 충분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원했던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서슴지 않았습니다. 자크뮈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도할 수 있는 그의 SNS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브랜드 마케팅과는 일절 관계없어 보이는 일상, 애인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최근 방문한 숙소와 식당 등 보통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업로드하는 것만큼 날것 그대로의 사진을 공유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여느 브랜드들과 달리 매번 광활한 대자연을 컬렉션 무대로 두는 것도 그가 지향하는 삶과 어린 시절부터 구축해 온 라이프스타일에서 비롯된 게 분명합니다. 자크뮈스의 SNS를 떠올렸을 때 첫 번째로 생각나는 장소는 바로 프랑스 마르세유입니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인 이곳은 그에게 상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자 세상의 그 어떤 도시보다 가장 사랑하는 곳이며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한 셀피를 자주 올리는 만큼 그는 여유 시간이 날 때마다 마르세유에서의 휴가를 즐기고 동시에 컬렉션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특히 2년 전에는 직접 마르세유 카페와 맛집, 숙소, 쇼핑 플레이스 등을 소개하는 시티 가이드를 공개하기도 해 마르세유를 향한 그의 애청을 더욱이 드러낸 바 있습니다. 두 번째는 프랑스 테울 쉬르 메르로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 테울 쉬르 메르에 자리 잡은 대저택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름하여 '버플 팰리스'는 피에르 가르뎅의 친구이자 세계적인 건축가 앙티 로바 그가 설계한 곳으로 집이 완공되기 전 친구가 사망하자 피에르 가르뎅이 이어받아 마지막 여생을 보낸 저택으로 이후 크리스티 경매에 오르기도 했으며, 한때 4억 5천5백만 달러 매매가를 불러 유럽에서 가장 비싼 건축물 리스트에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6 디올 크루즈 쇼 배경을 장식하며, 디올 수석 재단사 출신이었던 피에르 가르뎅은 자신의 저택에서 펼쳐지는 라프 시몬스의 컬렉션을 지켜봐 화제를 모으기도. 자크뮈스는 테마파크를 방불케 하는 버블 팰리스의 곳곳을 포착해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며 이곳, 그리고 피에르 가르뎅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표한 바 있습니다. 자크뮈스가 세 번째는 자주 방문하는 곳 중 하나로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 에메랄드빛 해변으로 유명한 이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섬으로 오래전부터 유럽 귀족 왕실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으며 따스한 기온과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많은 이들의 허니문 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자크뮈스 역시 애인과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보내기도 하였는데 숲 속에 풀장이 자리한 숙소를 통째로 빌리기라도 한 양 둘만이 전부인 곳에서 독립적인 시간을 보낸 모습이 역력합니다. 모두가 꿈꾸는 달콤한 휴양의 한 장면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담아낸 자크뮈스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